JFK의 이미그레이션 줄은 길었다. 심사관은 깐깐하고 느렸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린 뒤에 비로소 바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공기가 차다. 머플러를 귀까지 끌어올려 감았다. 케이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새, 원래부터 있던 사람처럼 나타났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중간의 테이블에 앉아 와인 한 잔, 또는 한 병을 놓고 꾸준히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다-지치지도...
케이는 현재에 마음 둘 것이 하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번 마음에 들어온 것은 오래 품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가 종종 꺼내는 지난 시간의 단면들은 모두 그의 모습이다. 감정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더는 새로운 것이 더해지지 않는 인연들을 주머니 속의 조약돌처럼 매만졌다. 돌이켜보고, 생각하고, 정리한 과정을 거친 그의 지나간 사람들은 모두 동그...
케이의 몸은 보던 것과 달리 뜨거웠다.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그의 몸을, 그 아래의 근육과 뼈를 해체하듯 오래 관찰했지만, 체온이 있는 몸은 모든 곳이 새로웠다. 움직일 줄 아는 조각이 이름과 감정과 소리를 지닌 존재로 내 아래에서 탈바꿈하는 것만으로 깊은 곳이 뻐근해졌다. 그는 대부분 크게 소리 내지 않고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케이지. 록상이 낮게 나를 불렀다. 유독 긴 밤이었다. 손님들이 많았다. 주인은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손버릇이 나쁜 남자 하나가 만취해서 소동을 일으키기 전까지. 피아노 소리도, 노랫소리도 사라졌다. 욕설인 게 뻔한 거친 말과 호통과 글라스 깨지는 소리만 들렸다. 이 동네의 거친 친구들은 난동을 부리는 남자를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
얼굴 한가운데를 따라 주근깨가 난 청년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츠키시마가 말릴 틈도 없어 카게야마와 통성명을 하며 자신을 야마구치라 소개한 청년은 낙타들을 몰고 마을로 앞장섰다. “도련님이 출발하셨단 소식은 한참 전에 와서, 오실 때가 됐는데 왜 이리 늦어지나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짐이 늘어서.” 마을 사람들의 우려를 듣기 좋은 어투로 전하는 야마구...
이동할 때는 말 시키지 마. 츠키시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낙타에 탄 순간부터 츠키시마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신이 서고 싶을 때 서고,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비웃고 싶을 때 비웃었다. 카게야마가 묻는 말에 답해줄 때도 있었지만,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앞서 나갈 때가 더 많았다. 뒤에서 이름을 부르면 못 들...
“그래서 나란히 지각이시다?” “엄. 밀. 하. 게. 지각은 아니…” 츠키시마는 무릎으로 옆에 서 있는 리에프의 오금을 툭 밀었다. 흐억, 괴상한 소리를 내며 꼿꼿하던 리에프의 자세가 허물어졌다. 타나카 사에코는 그제야 입술을 비틀었다.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사에코는 스타일리스트 쪽을 가리켰다. “얼른 가봐. 스태프들 손 엉키게 하지 말고...
카게야마는 잠에서 깼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세상이 느껴졌다. 마치 한 번도 잠들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카게야마는 일어났다. 눈을 뜬 채, 카게야마는 점점이 작은 별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깨어난 거지. 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지. 아직 남은 밤은 길었다. 낮 동안 온몸을 증발시켜 버릴 기세의 뜨거운 공기와 코로 들이닥치는 모래바람과 꿀렁거리는 ...
카게야마가 지속적으로 보내던 신호는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자신이 사막의 어디쯤 떨어졌는지 알기 위해서든, 말 없는 남자가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 알기 위해서든 송수신기 네트워크 중 하나에라도 신호가 닿아야 했다. 원망스럽게 시선을 든 카게야마는 해가 비스듬히 넘어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후 내내 불어닥쳤던 강한 모래바람 때문에 시야는 아직도 ...
“어이, 주인” “-님.” 생전 처음 타보는 낙타의 승차감에 헛구역질한 것은 하루하고 반나절뿐이었다. 카게야마는 세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턱 가라앉았다 대각선 방향으로 꼬리뼈부터 밀어 올려지는 감각을 곧 즐기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치를 보며 짐더미 사이에 끼어있는 흰 천을 끌러내 남자가 하고 있는 모양새를 요령껏 따라 머리에 칭칭 둘러 내려오게 한 이후로...
안구를 태워버리는 태양 아래를 걸을 때 필요한 건 물도, 동반자도 아니다. 튼튼하고 영리한 낙타는 물론 있어야 하지만, 그건 사막을 건너는 최소 필요조건이다. 무사히 사막을 건너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는 예리하게 벼린, 강한 정신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서서히 움직이는 백색왜성 A-257의 위치를 계산하...
습도가 높고 뜨거운 곳에서는 숨쉬기가 힘들다. 게다가 등 뒤에 단단한 몸을 포개고 있는 남자가 온몸을 으스러질 듯이 부여안고 있다면 더더욱. 정신이 아득하고 하얗게 날아갔다가 노이즈 낀 화면처럼 서서히 돌아올 무렵, 츠키시마는 머리카락 사이로 울리는 리에프의 그르렁거림의 끝자락을 들었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 목 가장 안쪽을 긁고 마는 소리다. 산소가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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